임상논고 臨床論攷 · 고금의고 018
작년과 같은데 CT는 정상일 때
게실염을 겪은 환자의 하복부 통증과 ‘재발’이라는 기억
이전 발작과의 유사성은 환자의 몸이 제공하는 유효한 비교자료지만, 현재의 위험도는 발열·염증수치·복막 자극·영상·시간 경과를 함께 보아야 하며 재발 공포와 진단 확정 사이에 추적 관찰의 자리가 있다.
“작년과 거의 똑같습니다.” 이 말은 복통 진료에서 가볍지 않다. 환자는 통증의 위치와 질감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오한과 발열, 입원, 금식, 항생제, 혹시 장이 터질지 모른다는 설명까지 한 덩어리로 기억한다. 1년 뒤 배꼽 아래가 다시 찌르고, 방지턱을 넘을 때나 달릴 때 울리듯 아프다면 몸은 과거의 사건을 즉시 호출한다. 환자의 불안은 과장이 아니라 이미 겪은 중증도의 기억에서 생긴다.
그러나 “같은 느낌”과 “같은 병리”는 같은 문장이 아니다. 이번에는 오한과 발열이 없고 식욕이 있으며, 백혈구는 약 1만1천으로 가볍게 올라갔지만 복부 CT에서 뚜렷한 이상이 없었다.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고, 하복부 압통과 움직임에 따른 통증이 남는다. 이 조합은 무엇을 뜻할까.
먼저 정상 CT가 말하는 범위를 정확히 잡아야 한다. 적절한 시점과 방법으로 시행한 CT는 게실 주위 지방 침윤, 장벽 비후, 농양, 유리공기 같은 현재의 구조적 염증과 합병증을 찾는 데 유용하다.2 따라서 ‘그때 영상에 잡힐 만큼 진행된 게실염이나 합병증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한 안심 자료다. 하지만 CT가 통증 경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아주 이른 변화, 이미 호전 중인 미약한 염증, 장의 경련과 팽창, 복벽 통증, 염증 후 과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플 수 있다.
게실염을 앓은 뒤 만성 또는 반복적인 복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AGA는 이런 경우 지속 염증, 협착·누공 같은 구조적 문제를 영상과 내시경으로 배제한 뒤 내장 과민을 고려하라고 권고한다.1 한 차례의 염증이 가라앉은 뒤에도 장-뇌 축의 경계값이 낮아져 평소라면 통증이 아니었을 장운동이나 가스 팽창을 아프게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신경성’이라는 말로 밀어낼 현상이 아니라, 염증 이후 감각 조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리적 설명이다.
이번 증례의 ‘방지턱, 출렁임, 달리기’는 또 하나의 질문을 만든다. 기침, 발뒤꿈치 충격, 보행 같은 움직임에 통증이 커지는 것은 복막 자극에서 볼 수 있지만 그것만의 표지는 아니다. 복벽 근육이나 근막의 국소 통증도 몸통이 흔들리거나 긴장할 때 악화한다. 진찰에서는 먼저 환자가 가만히 누우려 하는지, 기침이나 가벼운 발뒤꿈치 충격이 통증을 재현하는지, 비자발적 방어와 반발통이 있는지를 본다. 이어 통증점이 손가락 하나로 가리킬 만큼 좁은지, 복근에 힘을 주었을 때 압통이 더 세지는지(Carnett 징후)를 확인하면 복벽 기원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5 어느 하나가 단독으로 진단을 확정하지는 않는다.
대변이 가늘어졌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며칠간 죽과 이온음료 위주로 먹었다면 대변의 부피와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장경련도 일시적으로 굵기를 바꾼다. 반면 가늘어진 변이 수주 이상 지속되고 혈변, 체중감소, 빈혈, 배변 습관의 뚜렷한 변화가 동반되면 협착이나 종양을 포함한 다른 원인을 평가해야 한다. 짧은 변화와 지속되는 통과 장애를 같은 무게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게실의 개수나 크기는 환자가 자주 묻는 문제다. 게실은 주로 장벽의 약한 지점으로 점막과 점막하층이 밀려나온 구조이며, 연령, 결합조직, 장내 압력, 식사와 생활 요인이 함께 관여한다. 그러나 ‘몇 개이면 아프다’는 단순한 문턱은 없다. 게실증 자체는 흔히 무증상이고, 통증과 위험을 만드는 것은 특정 게실 주위의 염증, 염증 범위, 농양·천공·협착 같은 합병증이다. 이전 CT에서 게실의 수보다 염증 구간이 길거나 후복막 농양이 있었던 경우 재발 위험이 더 높았다는 관찰도 있다.4
재발률은 연구 대상과 추적 기간에 따라 다르다. 과거에는 반복 발작이 곧 더 위험한 천공으로 간다는 두려움 때문에 비교적 이른 수술을 권하기도 했다. 지금은 첫 발작 뒤 반복이 가능하더라도, 이후의 복잡성 발작이 반드시 누적되는 것은 아니며 수술 결정을 횟수만으로 정하지 않는다.1 선택적 S상결장 절제술은 면역 상태, 농양·누공·협착의 병력, 발작의 빈도와 강도, 지속 증상, 일과 삶의 손실, 수술의 위험과 환자 선호를 함께 본다. 수술은 문제 구간을 제거해 재발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지만 0으로 만들지 않으며, 내장 과민이 통증의 주된 원인이라면 절제 후에도 증상이 남을 수 있다.3
따라서 정상 CT 뒤의 진료는 “이상 없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축을 세우는 일이다. 체온, 통증의 위치와 범위, 식사 가능 여부, 배변·가스 배출, 압통과 방어, 백혈구와 CRP의 변화를 다시 본다. 증상이 계속되거나 악화하면 영상의 시점과 다른 진단을 재검토한다. 안정되고 검사에서 활동성 염증이 배제된다면 식사를 서서히 회복하고, 과도한 금식으로 장기능을 더 흔들지 않으며, 장경련과 과민·복벽 요소를 구분해 다룬다.
한의 진료가 들어갈 자리도 이 순서 뒤에 생긴다. 급성 화농과 복막 자극을 처방으로 가리는 것이 아니라, 위험도를 먼저 낮춘 다음 식후 팽만, 경련성 통증, 배변의 변화, 복벽 긴장과 전신 상태를 변증해 치료 목표를 좁혀야 한다. 통증을 줄이는 것과 병의 자연사를 오판하지 않는 것이 동시에 필요하다.
재평가를 앞당겨야 할 신호는 분명하다. 새로 생긴 발열·오한, 지속적으로 심해지는 국소 통증, 반복 구토, 복부 경직이나 반발통, 혈변, 가스와 대변이 멎으면서 배가 붓는 현상, 실신감이나 빠른 맥박이 있으면 예약일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반대로 활력징후가 안정되고 통증이 줄며 식사와 배변이 회복된다면 그 경과 자체가 중요한 진단 정보가 된다.
작년과 같다는 환자의 말은 틀린 진단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정상 CT 역시 “아프지 않다”는 판정이 아니라 그 시점에 보이는 위험한 구조 변화가 낮다는 자료다. 좋은 진료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기억된 통증과 현재의 검사 사이에 경과 관찰이라는 다리를 놓고, 그 위에서 병의 깊이와 방향이 바뀌는지를 반복해 확인한다.
자료와 근거
참고 문헌 5편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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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지침
AGA Clinical Practice Update on Medical Management of Colonic Diverticulitis
Peery AF, Shaukat A, Strate LL. Gastroenterology. 2021;160:906-911.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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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지침
2020 update of the WSES guidelines for acute colonic diverticulitis
Sartelli M, et al. World J Emerg Surg. 2020;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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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학회 환자자료
Diverticular Disease
American Society of Colon and Rectal Surgeons. Diverticular Dis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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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호트 연구
Long-term follow-up after an initial episode of diverticulitis
Hall JF, et al. Dis Colon Rectum. 2011;54:283-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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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리뷰
Acute Abdominal Pain in Adults: Evaluation and Diagnosis
Yew KS, George MK, Allred HB. Am Fam Physician. 2023;107:585-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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